아프리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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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쁜우리월드 작성일11-06-08 17:27 조회4,730회 댓글0건본문
<탄자니아>
마리아 힐러(여, 44세) “돌 깨는 인부에서 천염색 전문인으로 새 삶을 얻었습니다”
저의 이름은 마리아 힐러입니다. 올해 나이 44살입니다. 6남매 중 네 번째였던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형제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부모님께 우리 6남매의 학비지원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1985년 은행경비원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고, 하느님의 축복으로 5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이 중 2명은 남편이 실직한 후에 태어났습니다. 남편은 3년간 직장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남편의 새로운 직장을 찾아 ‘다르살렘’으로부터 150Km 떨어진 ‘무완자’라는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여자를 만난 남편은 그녀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아무 도움 없이 저를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저와 저의 어린 자녀들의 고된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자녀와 함께 다르살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첫째 아이는 아빠와 함께 있었는데 어느날 남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첫째 아이를 저에게 맡기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하여 학비가 부담되었던 것입니다
Life at my Home
하루 두 끼 식사에 감사해 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끔은 세 끼 식사도 합니다. 아무런 도움 없이 떠나버린 남편을 멀리하고 무완자에서 다르살렘으로 돌아온 이후 제가 하는 일은 20Kg 한 무더기에 300실링(한국의 250원)의 돈을 받는 돌 부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Training at BVTC(보코 직업훈련센터)
어느 날 손게라(직업훈련센터 직원)가 저희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저의 어려움을 알고 기쁜우리월드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센터가 오픈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봉제교실, 천염색 교실, 양초교실, 컴퓨터교실이 있으며 직업훈련에 관심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더욱 나를 기쁘게 한 것은 교육비가 무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돌 깨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으나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차와 빵이 제공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다음날 저는 기쁜우리월드를 방문하여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등록하였고, 2010년 4월 천염색 및 양초 만들기 교실에 참여하여 직업훈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12월 27일 12시쯤 기쁜우리월드 직업훈련센터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2011년도부터 시작하는 공동작업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올해 1월 31일부터 공동작업장이 시작되었고 직업훈련센터로부터 매월 20,000실링의 월급도 받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공동작업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여 생긴 수익금도 월급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저는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지금의 저의 행복을 만들어 주신 기쁜우리월드와 한국의 많은 후원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언제 제가 만든 천염색 제품과 양초제품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Asante S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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